감동실화

형제인데 왜 남보다 못할까 - 누르지 못하는 연락처의 심리학

2026-06-08 조회 8 좋아요 댓글 0
요약 형제 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다리가 어떻게 균열되고 무너지는지를 심리학적 관점에서 풀어낸 영상. 어린 시절의 친밀함이 거리, 경제적 격차, 역할 고착, 부모 부재로 인해 변질되는 과정을 조명하고, 관계를 재정의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전체내용


핸드폰 연락처를 내리다 보면 손이 멈추는 이름이 하나쯤 있다. 형, 누나, 동생. 그런데 끝내 누르지 못한다. 전화를 걸면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그냥 끊자니 마음이 찜찜하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 알고 있는 사람인데 택배 기사에게 건네는 인사보다 나누는 말이 적다.


어떤 사람은 동생 결혼식에 마지막으로 얼굴을 봤다고 했다. 자기 결혼 때는 아무런 도움 없이 혼자 치러냈는데 동생 차례가 되니 부모님이 적극적으로 나서더라는 것이다. 축하한다는 말이 목구멍에 걸렸고, 그날 이후로 동생에게 연락한 적이 없다.


미워서가 아니다. 한때는 아무 생각 없이 옆에 앉을 수 있었던 사이인데 지금은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는 것이다.


형제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다리가 놓여 있다. 어릴 때는 그 다리 위를 맨발로 뛰어다녔다.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그 다리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첫 번째 균열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온다. 어릴 적에는 같은 집에서 같은 반찬을 먹고 같은 이불을 덮었다. 다리가 필요 없었다. 그냥 옆에 있었으니까. 사람의 뇌는 매일 보는 얼굴을 좋아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자주 보면 익숙해지고, 익숙하면 편해지고, 편하면 가깝다고 느낀다. 형제가 어린 시절 가까웠던 건 유별나게 사이가 좋아서가 아니라 매일 얼굴을 맞대고 살았기 때문이다.


이걸 뒤집으면 두려운 이야기가 된다. 보지 않으면 낯설어지고, 낯설면 불편해지고, 불편하면 멀어진다. 지금 사이가 벌어진 것은 마음이 식어서가 아니라 단지 자주 보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거리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높이까지 달라진다. 한쪽은 대기업에 자리 잡고 다른 쪽은 작은 가게를 운영한다. 한쪽은 서울에 아파트를 마련하고 다른 쪽은 전세금도 빠듯하다. 높이 차이가 벌어지면 다리 위를 걷는 자세 자체가 달라진다. 높은 쪽은 말을 고르게 되고, 낮은 쪽은 등이 뻣뻣해진다.


어떤 사람이 형 집에 방문한 적이 있다. 거실 소파에 앉았는데 형수가 음료를 내왔다. 평소 가족이 쓰는 머그잔이 아니라 손잡이도 없는 유리잔이었다. 손님에게 내미는 잔. 소파에 앉았는데 등이 등받이에 닿지 않았다고 한다. 기댈 수 없는 곳이라는 걸 몸이 먼저 알아챈 것이다.


성인이 되면 형제 각자가 짊어진 짐의 무게가 전혀 달라진다. 사람이 진심으로 깊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한계는 대략 다섯 명이다. 배우자, 자녀, 부모, 절친한 친구까지 채우고 나면 형제가 들어갈 자리가 남아있지 않다.


형제 사이에는 어릴 때 정해진 역할이 있다. 양보하는 첫째, 눈치 보는 둘째, 귀여움 받는 막내. 어른이 되면 그 역할이 굳어진다. 서른다섯 살 팀장인데 형 앞에만 서면 열두 살 동생으로 돌아간다. 만날 때마다 수십 년 전의 자신에게 끌려 들어가는 느낌. 그게 불편해서 만나지 않게 된다.


다리 위에 한 번도 올려본 적 없는 무게가 갑자기 올라오는 순간이 있다. 부모가 쓰러지는 것이다. 누군가는 매일 병원에 가야 하고 누군가는 비용을 대야 한다. 금이 간 다리 위로 형제들이 다시 올라서는데, 이번에는 각자의 사정이라는 짐을 잔뜩 짊어진 채다.


가족 안에는 보이지 않는 장부가 있다. 누가 얼마나 받았고 누가 얼마나 줬는지 무의식이 기록한다. 7년 동안 홀로 부모를 돌본 사람의 장부에는 붉은 글씨가 가득하고, 간간이 얼굴만 비춘 형제의 장부에는 검은 글씨만 남아 있다. 장부의 잔고가 맞지 않으면 분노가 솟구칠 수밖에 없다.


부모가 살아 계실 때는 그분들이 다리의 교각이었다. 생일, 명절에 모이는 이유가 있었고 모이니까 최소한의 연결이 유지됐다. 그 교각이 사라지면 다리는 자력으로 버텨야 한다. 균열투성이인 채로.


아버지를 떠나보낸 뒤 형에게 전화를 건 사람이 있었다. 특별한 용건은 없었다. 같은 아버지의 자녀인 사람 목소리가 필요했을 뿐이다. 형은 무슨 일이냐 물었고, 아무 일 아니라 했더니 바쁘니까 끊겠다고 했다. 그게 마지막 통화였다. 3년째라고 한다.


형제한테는 기대가 있다. 같은 피를 나눈 사이니까 당연히 내 편이어야 하고 당연히 알아줘야 한다는 기대. 그 기대가 깨질 때 느끼는 감정은 실망을 넘어 배신에 가깝다. 남에게는 애초에 기대가 없으니 상처도 없다. 그래서 형제가 남보다 못하다는 말이 나온다.


형제는 살아 있는데 관계는 사라졌다. 이별이면 슬퍼하고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형제는 연락처에 이름이 있고 명절이면 얼굴을 본다. 끝난 건지 아닌 건지 알 수 없는 상실은 정리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유독 오래 마음에 남는다.


그러나 지금 이 이야기를 들으며 머릿속에 떠오른 이름이 있다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어린 시절 그 다리로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균열 난 다리 위의 먼지를 한번 쓸어볼 수는 있다.


형제를 가장 친한 사이로 되돌리겠다는 기대를 내려놓으면 된다. 대신 이렇게 정의해 보는 건 어떨까. 나의 어린 시절을 증명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증인. 초등학교 때 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부엌에서 어떤 냄새가 났는지, 이 세상에서 그걸 기억하는 사람은 그 사람뿐이다. 1년에 한두 번, 용건 없이 별일 없지 한마디면 충분하다. 용건 있는 연락은 업무이고, 용건 없는 연락이 관계다.


다만 모든 다리가 수리할 가치가 있는 건 아니다. 만날 때마다 비교당하고, 건널 때마다 발밑이 무너지는 다리라면 거기서 내려오는 게 맞다. 형제라는 이름이 모든 것을 용서하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핸드폰에 저장된 그 이름. 누르지 못해도 괜찮다. 떠올랐다는 것 자체가 다리가 아직 남아 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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