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잃은 천억 회장, 반지하에서 눈물의 무릎꿇기...
서울 강남의 대기업 회장 윤재현은 모든 것을 가진 남자였다. 수천억 자산,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펜트하우스, 줄 서는 사업 파트너들. 하지만 그에겐 한 가지 없는 게 있었다. 진심으로 곁에 있는 사람. 아내는 재산 때문에 남았고, 아들은 카드값 타령만 했다. 유일하게 그를 걱정하는 건 20년째 함께한 운전기사 박 기사뿐이었다.
어느 날 새벽, 윤재현은 자택 계단에서 굴러떨어졌다.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 그는 자기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의사는 역행성 기억상실이라 했다. 아내는 병문안 대신 변호사를 보냈고, 아들은 위임장을 들고 나타났다. 윤재현이 아무것도 모른 채 멍하니 병실 천장만 바라보고 있을 때, 박 기사만이 매일 도시락을 싸들고 찾아왔다.
퇴원 후 윤재현은 갈 곳이 없었다. 가족은 그를 요양원에 보내려 했지만, 박 기사가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낡은 빌라 반지하, 좁은 방이었지만 처음으로 따뜻한 밥상 앞에 앉았다. 박 기사의 아내 순자 씨는 된장찌개를 끓여주며 말했다. 천천히 나으시면 된다고.
기억을 잃은 윤재현은 동네를 걸었다. 시장 골목에서 반찬가게 할머니가 웃으며 시식을 권했고, 세탁소 사장님은 옷이 없는 그에게 깨끗한 남방을 건넸다. 아이들은 공원 벤치에 앉은 그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왔다. 이 모든 게 그에게는 처음이었다. 돈이 아닌 마음으로 건네는 온기.
어느 비 오는 밤, 윤재현은 박 기사네 처마 밑에서 빗소리를 듣다가 갑자기 머릿속에 장면이 스쳤다. 거대한 회의실, 서류 더미, 누군가를 향해 소리치는 자신의 모습. 그리고 한 노인이 무릎을 꿇던 장면. 가슴이 조여왔다. 이건 뭐지. 나는 누구한테 그런 짓을 했던 거지.
기억이 조각조각 돌아오기 시작했다. 건설 현장에서 쫓아낸 하청업체 사장. 병원비를 못 내 매달리던 직원. 수십 년 함께한 동업자를 배신한 밤. 윤재현은 자기가 얼마나 잔인한 사람이었는지 깨달았다. 이름 모를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기억이 완전히 돌아온 날, 윤재현은 펜트하우스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박 기사에게 말했다. 나를 그 사람들한테 데려다달라고. 쫓아냈던 하청업체 사장을 찾아가 무릎을 꿇었다. 병원비를 못 낸 직원의 수술비를 갚았다. 배신한 동업자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박 기사에게 말했다. 20년 동안 당신만이 진짜였다고.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박 기사는 아무 말 없이 웃었다. 원래 그랬으니까.
윤재현은 회사로 복귀했지만 사람이 달라져 있었다. 직원들의 이름을 불렀고, 구내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었다. 기부 재단을 만들어 자신이 무너뜨린 사람들의 삶을 다시 세워주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속삭였다. 기억을 잃어서 사람이 됐다고.
1년 후, 윤재현의 재단 행사장. 그가 도운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하청업체 사장은 새 회사를 차렸고, 그 직원은 건강을 되찾았다. 박 기사는 여전히 그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윤재현이 마이크 앞에 섰다. 나는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진짜 소중한 것을 알았습니다. 기억보다 중요한 건, 사람이었습니다. 객석에서 박수 대신 눈물이 먼저 터졌다.
댓글 2개
돈과 권력이 전부인 줄 알았던 사람이 기억을 잃고 나서야 진짜 삶을 배운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네요. 기억을 되찾은 뒤 용서를 구하러 다니는 모습이 진짜 감동이에요.
돈이 전부라 생각했던 사람이 기억을 잃고 나서야 진짜 삶을 배운다는 설정이 너무 와닿아요. 우리 모두 언젠가는 이런 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감동적인 이야기네요.